안녕하세요. 앳홈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혜준입니다. 평소엔 어도비나 피그마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제가 블로그까지 온 건, 지난 11월부터 1월까지 진행했던 VIP 파트너 키트 제작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인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 첫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던 터라 이렇게 회고하는 글을 써보게 됐습니다. 그럼 잠깐, 저와 함께 제 입사 첫날로 돌아가 보실까요?
💡
이런 내용이 담겨 있어요
입사 첫날, 디자인이 아니라 프로그램 이름부터 짓게 된 이야기
'파동'이라는 콘셉트와 키트 구성품을 채워나간 과정
제작 과정에서 마주친 예상 밖의 변수들..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입사한 그날 오후, CDO 세훈님께 메시지가 왔습니다. 천천히 읽어보니, 그간 앳홈과 함께해 온 인플루언서들 중 좋은 성과가 있었던 인플루언서들을 VIP로 선정해,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저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디자인들을 맡게 됐죠. 그중 VIP들에게 선물할 '스페셜 키트'를 디자인하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곧바로 제 첫 프로젝트가 되었는데요.
방향성은 있었지만 VIP 프로그램 콘셉트나 이름부터, 스페셜 키트 제작을 위한 예산까지 뚜렷하게 정해진 건 없었습니다. 스페셜 키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네이밍부터 로고 제작, 구성품 기획과 패키지 제작, 이후 운영 시스템까지 맡아서 해야겠구나 싶었죠. 정해진 게 없다는 건, 바꿔 말하면 처음부터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재밌어 보였어요.
VIP 파트너 키트,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다행히도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PR 키트*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는데요. 여러 번 키트를 만들다 보니 저만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가장 먼저는 '콘셉트가 뚜렷한가'입니다. 그래야 선물이나 패키지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뚜렷하게 전달될 테니까요. 다음으로는 '적절한 비용'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산이 많으면 당연히 고급스러운 키트를 만들 수 있겠죠. 그렇다고 비용을 무한정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중요한 건 한정된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가였습니다.
마지막은 '안정성'입니다. 패키지는 본질적으로 물건을 안전하게 실어나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내부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야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PR 키트: 브랜드가 신제품 출시나 캠페인 홍보를 위해 인플루언서, 언론인, 주요 파트너에게 보내는 맞춤형 홍보 선물 패키지
먼저 타사에서 어떤 VIP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조사했어요. 럭셔리 브랜드가 우수 고객한테 주는 선물이라든지, 호텔에서 VVIP에게 주는 키트들을 찾아봤는데요. 찾아보다 보니까, 우리가 선물하려는 대상이나 목적과는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보통 VIP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브랜드가 우수 고객한테 주는 선물이나 혜택 같은 것인데, 저희가 하려는 건 제품을 직접 소개하고 판매하면서 우리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 온 인플루언서들을 위한 거였으니까 방향성이 다를 수밖에 없었죠.
단지 좋은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브랜드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특별한 관계'이자 '서로 선한 영향을 주는 관계'라는 것이 잘 전달되는 경험을 만들어야 했어요. 이 발견을 기반으로 키트에 녹여낼 이미지를 크게 세 가지로 좁혔는데요. 차별화된 브랜드 아이덴티티, 소장하고 싶어지는 특별함, 그리고 받는 사람이 귀하게 대우받는다고 느끼는 감정적 유대감. 이 세 가지 기준을 계속 되뇌면서 모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디자인 전에 먼저, 프로그램 네이밍부터
제게 주어진 첫 임무는 디자인이 아니라 프로그램 이름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 후보를 두고 고민했는데요. 앳홈이 A로 시작하니까 앰버서더(Ambassador)의 A와 연결해볼까 생각도 했었고요. 'A+' 같은 이름도 떠올려 봤는데, 등급을 나누는 느낌이 너무 강해 보여 본질과는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필요한 건 눈에 띄는 이름을 짓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의 목적과 관계성을 잘 묶어내는 거였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논의를 거쳐 'VIP Partner by ATHOME'으로 정했죠. 브랜드와 인플루언서의 협력 관계를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네이밍을 마친 뒤에는 프로그램 전반에 사용될 로고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처음 기획은 우아한 느낌과 고급스러운 무드를 형성하기 위해 장식적인 형태, 곡선을 과감하게 써 봤는데, 조금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프로그램이 전달해야 하는 건 신뢰감이고 오래 가는 관계였으니까, 조금 더 절제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온 게 아래 로고인데요. 가라몬드(Garamond)체가 지닌 역사성과 클래식한 이미지를 빌려왔습니다. 신뢰감과 우아함을 보여줄 수 있도록요. 곡선을 적절히 결합하고 파동이라는 선물의 모티프까지 담아낼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파동’이라는 단어를 만나기까지
이름과 로고를 만들었으니 이제 진짜 선물, '스페셜 키트'를 구상할 차례였습니다. 제가 제일 경계했던 건 '그냥 예쁜 선물'이었어요. 비싼 제품이 아니라 앳홈과 VIP 파트너들의 관계의 의미를 전할 수 있는 오브제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오브제들이 전달할 의미를 관통하는 하나의 콘셉트가 필요했죠.
생각이 끊임 없는 타입이라 회사 밖에서도 키트와 업무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어요. 주말에 외출했을 때도 소품샵이 보이면 들렀다가 ‘이런 건 어떨까?’, ‘콘셉트는 뭘로 해야 할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었죠. 그러다가 명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어디선가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퍼지는 모양을 봤거든요. 물방울이 닿았다… 영향을 퍼뜨린다… 널리 퍼진다…. 파동… 이런 식으로 이어지면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퍼져 가는 모습이 그려졌어요. 그렇게 '파동(Waves)'이라는 콘셉트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엔 퍼지는 행위를 형상화할 수 있는 제품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키트 구성품을 채워 갔습니다. 퍼지는 건 뭐가 있을까요? 빛도 퍼지고, 소리도 퍼지고, 물결도 퍼질 수 있죠. 그렇게 생각을 확산하다 보니 처음엔 후보군이 많아졌어요. 물결을 보여 줄 수 있게 찻잎을 넣어볼까 고민하기도 했고, 빛이 퍼지는 걸 보여줄 수 있는 크리스탈 문진도 고려했죠. 아무래도 비용도 조정하고, 패키지까지 제작해야 해서 전부 넣을 수는 없었는데요. 그렇게 줄이고 줄이다가 소리의 파동과 빛의 파동, 두 가지를 남기기로 했습니다.
소리의 흐름은 '싱잉볼'로 보여주고, 빛의 흐름은 '캔들'과 '캔들홀더'로 나타내기로 했어요. 파동이라는 이미지에서 출발한 아이템이긴 하지만, 우연찮게도 둘 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힐링을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오브제들인데요. 홈 라이프스타일 솔루션 그룹이라는 앳홈의 지향점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직접 확인해야만 보이는 것들
패키지를 실제로 제작할 업체를 고르는 것도 제 몫이었는데요. 여러 곳에 견적을 넣어보던 중 한곳을 알게 됐는데, 견적을 받아보니 기존에 거래하던 곳보다 거의 절반 정도 저렴했습니다.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들더라고요. 사양을 잘못 이해한 게 아닌가 싶어서, 구성품 샘플들을 챙겨 들고 인쇄소로 직접 찾아갔습니다.
도착해서는 크기, 사양, 생산 방식까지 하나씩 짚어 봤습니다. 잘못된 견적이 아니었어요. 현장에 가서 이야길 나누다가, 또 하나의 제안을 받았는데요. 처음엔 흑지 사용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업체에서 같은 계열의 텍스처가 있는 용지를 써보라더군요. 샘플로 받아보니 확실히 텍스처가 있어서 그런지 질감이 더 고급스럽게 느껴졌어요. 비용도 거의 동일했고요. 크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죠. 직접 가지 않았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부분이었습니다.
패키지에 쓸 종이와 업체까지 정하고 나서야, 진짜 규격 설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기성 패키지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제작해야 했기에, 그만큼 세심한 디테일이 중요했습니다. 일단 캔들홀더는 유리라, 운송 중에 파손되지 않게 딱 맞게 고정되는 구조가 필요했는데요. 캔들홀더 샘플을 하나 구매해서 몰드 목업을 만들고, 조립 테스트까지 끝낸 뒤에, 130세트 기준으로 로고 각인이랑 단가, 일정까지 전부 조율했죠. 여기까지는 괜찮아 보였는데요…
로고를 넣은 캔들홀더 샘플을 스펀지 몰드 목업에 넣어봤더니 사이즈가 안 맞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처음에 샘플로 구매했던 캔들홀더가 리뉴얼 전 모델이었고, 업체가 실제로 각인해서 보내 준 건 리뉴얼된 신제품이었더라고요. 구버전을 기준으로 목업을 만들었는데 신버전이 온 겁니다. 목업부터 다시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패키지 업체도 금형 작업 마무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빠른 확인이 필요했는데요. 패키지 구조 자체가 제품 규격 기준으로 짜여 있어서, 전체를 다시 만들어야 할 수도 있었죠.
저는 원래 문제가 생기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보는 편이에요. 상황에 휘둘리기보다는 문제 자체에 전념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캔들 사이즈가 왜 안 맞는지, 왜 파악을 못했는지 확인하는 건 나중의 일로 미뤄두고, 일단 130개 세트가 나올 수 있는 수량이 확보되는지부터 확인해달라고 했어요. 그게 파악돼야 스펀지를 작은 쪽에 맞출지 큰 쪽에 맞출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인쇄소에도 바로 연락해서 작업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비슷한 변수는 싱잉볼에서도 있었어요. 수작업으로 만드는 제품이다 보니 싱잉볼의 지름이 조금씩 다 다르더라고요. 여러 제품의 샘플을 받아서 확인해보니 어떤 건 스펀지 홀보다 커서 안 들어갔고, 어떤 건 너무 작아서 안에서 흔들리는 거예요. 이것도 업체랑 허용 오차를 확실히 정해서 생산된 제품들을 다시 선별해서 기준 맞는 것만 각인하도록 했어요. 대충 넘어가도 티나지 않을 오차일 수 있지만, 기준을 세우고 전량 다시 확인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선물이 모두 깨지거나 엉망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우리의 리스크를 그대로 업체들에게 전달하면서 빠르게 문제를 공유했더니, 업체에서도 제품 규격과 물량을 빠르게 조사하고, 직접 제품들을 확인하면서 최종 규격을 맞춰 주셨어요. 문제가 보였을 때 대충 넘어가거나 뭉개지 않고, 빠르게 원인을 찾아 나섰더니 늦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완성해서 받는 데까지 일정이 지연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지금 다시 한다면, 구성품 업체들한테 다량으로 구매할 때 차이는 없는지, 따로 구매한 샘플과 받게 될 제품의 차이가 없을지 확인부터 할 것 같아요. 이런 제품들은 다 틀을 짜서 만들 테니까 사이즈가 항상 똑같을 거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수작업이라든지, 리뉴얼될 수 있다는 걸 생각 못 한 상태에서 시작했던 게 문제였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검증 단계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계속 굴러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
이렇게 제작한 키트의 개당 단가는 10만 원 이상으로 낮지 않았는데요. 그러니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 되고, 브랜드의 자산으로 관리해야 되겠더라고요.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증정했는지, 또 남은 재고가 얼마인지 계속 추적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지급 현황과 재고 관리 시트를 직접 만들어서 피플팀에 넘겼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같은 체계로 반출 이력과 재고가 관리되고 있습니다.
VIP 파트너 키트 프로젝트는 이렇게 키트 하나를 만드는 데서 끝난 게 아니라, 계속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까지 닿았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콘셉트를 정하고, 구성품을 좁히고, 현장에서 변수를 마주하고, 그걸 다시 체계로 정리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다음 프로젝트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었어요. 처음 하기에 딱 알맞은 프로젝트였지 않나 싶습니다.
파동이 어디에 닿을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저 역시 정답이 없는 상태를 즐기며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와 디자인 작업들에 부딪히고 있어요. 혹시, 저와 함께 이 파동을 더 멀리 퍼트려갈 분이 계신가요? 아래 버튼을 눌러 앳홈 [채용 페이지]에 들어와 보시면 어떨까요. 같이 만들어갈 게 아직 많답니다. 🏠